분명 시력이 꽤나 좋았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 공부하다 보니까 시력이 확 나빠졌다.
서서히 나빠져서 그런지 나빠진 줄도 모르고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수업을 듣는데 뒷자리에 앉으니까 판서가 하나도 안 보이길래 확 체감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수업을 그냥 안 들었다. 안경이 안 어울리기도 하고 렌즈도 원데이 렌즈를 쓰자니 아깝고 다회용 렌즈를 끼기엔 관리를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가끔 수업 들을 때나 영화를 보러 갈 때만 안경을 끼고 여행을 간다거나 전시를 보러 간다거나 눈이 좀 필요한 상황에만 렌즈를 끼곤 했다.
그래서 근 5년간 내 세상은 대부분 흐릿했다. 나는 그게 좋았다. 사람들 얼굴이 별로 궁금하지 않았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흐린 내 세상은 대체적으로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을 골라서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흐리게 세상을 보다가 놀러가서 기분좋은 날 렌즈를 끼고 있으면 그 날 세상이 선명하게 정말 예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이렇게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걸 계기로 내가 조금씩 긍정을 찾아간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아니 조금은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한 3-4년 전에 언니랑 아빠가 스마일라식을 하고 안경을 벗은 후로 부모님은 지속적으로 내게도 스마일라식을 권하셨다. 난 내가 좋아했던 내 흐린 세상을 잃고 싶지 않아서, 가끔 보던 세상의 아름다움이 주던 감동을 잃고 싶지 않아서 평생 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런 저런 일자리를 알아보다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안경 쓴 내 모습은 싫고, 매일 렌즈를 끼는 일은 쉽지가 않고, 보이지 않는 상태로 일을 한다는 것은 꽤나 민폐를 끼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언제라도 생각이 바뀔 것을 예상하신 것인지 내가 라식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마자 감사하게도 흔쾌히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셨다. 그래서 마음이 바뀌자마자 수술을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날짜에 예약을 했다. 주변에서도 하도 많이들 하니까 후기 같은 것도 전혀 안 찾아보고 병원도 수원 스마일라식 치면 광고에 뜨는 유명해보이는 병원으로 냅다 예약했다.
언니의 후기에 따르면 수술을 하고 나면 너무 눈이 부셔서 눈을 못 떠서 혼자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여 언니 휴무에 맞춰서 수술 예약을 하고 언니와 같이 내원했다. 수술 전 몇 가지 검사를 마치고 당일 수술이 가능한 상태라 바로 수술을 진행했다.
스마일라식에 대해 설명도 해주셨는데, 각막을 깎는게 아니라 살짝 찢어서 안에 있는 근시를 뺀다고 했던가. 수술 전 어딜 가나 설명을 잘 해주실테니 내 말을 너무 믿지는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술은 10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머리카락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 머리에 제전모 같은 것을 뒤집어 쓰고 수술실로 향했다. 나는 엄청 커다란 기계 위에 누워있으면 됐다. 이때부터는 내 시야를 기계가 가로막고 있어서 정확히 뭘로 뭘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본격적으로 수술에 들어가기 전 약간 쇠 느낌나는 링 같은걸 눈에 끼워서 눈이 감기지 않게 고정하고 마취가 되는 안약을 넣어주셨다. 나는 오른쪽 눈 먼저 하고 왼쪽 눈을 진행했다. 안약을 넣고 나서 기계에서 나오는 불빛을 보고 있으면 기계가 나한테 더 다가온다. 눈알을 완전 눌러버리는 느낌이 들고 선생님께서는 계속 불빛을 보고 있으라고 하신다. 그러고 있으면 갑자기 옆에서 눈알에 뭐가 쑥 들어온다. 불빛이 움직이는데 그걸 계속 보고 있으면 불빛이 이내 사라진다. 오른쪽 눈을 할 때 느낌이 굉장히 불쾌했는데 아직 한 쪽 더 남았다는 사실이 기분도 불쾌하게 만들었다. 물론 아픈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는 바로 앞이 보였다. 렌즈를 12시간 이상 끼고 있을 때 눈이 뻑뻑한 느낌을 느껴본 적이 있는데 마치 그런 느낌이 나고 약간 뿌옇게 보이기도 했다. 예상외로 눈이 막 부시지는 않았다. 언니 말로는 수술 끝나고 집에 와서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더니 아주 멀쩡해졌다고 하여 집 가서 푹 잘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마취가 풀리기 시작했는지 눈이 막 시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도대체 어떻게 잠을 잤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이 너무 시려서 잠에 들기가 어려웠다. 눈물이 아주 절로 나왔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도 잘 수가 없었다. 시간이 정말 느리게 갔다.
왼쪽 눈이 한창 아파올 때 오른쪽 눈은 그에 비해 아프지 않길래 왼쪽 눈이 뭔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내 왼쪽 눈이 괜찮아지고 오른쪽 눈에서 같은 느낌이 나길래 그저 왼쪽을 먼저 해서 그런거구나 싶었다. 참 정직한 증상이다.
수술 당일은 내내 시렸던 것 같다. 수술 후 일주일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은 이물감도 시림도 없이 멀쩡해졌다. 아직 조심은 해야할 단계인 것 같다.
시력이 갑자기 좋아지니 느낀 것은 세상이 참 예쁘다는 것이다. 건물들이 이렇게 반듯반듯한지 몰랐고 도로 위 자동차들도 라인이 그렇게 선명한지 몰랐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스스로 보지 않고 살았던 내가 참 어리석게 느껴졌다. 가끔 받았던 감동을 이제 매일 받을 수 있어서 매일 감사하게 되었다. 물론 눈이 좋아진지 얼마 안돼서 그럴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도 이 마음을 잊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상 스마일라식을 하게 된 계기와 과정, 하고 나서 느낀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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